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드리히 엥겔스 (문단 편집) === 말년 === 마르크스 사후에는 그가 미처 다 쓰지 못한 [[자본론]]의 2권과 3권의 원고를 정리하여 출판하는 일로 한동안 바쁘게 지냈다. 마르크스 사후 그가 남긴 원고들은 출처 인용이 전혀 정리가 안 되어 있고 마르크스의 글씨를 해독할 수 있었던 두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예니 마르크스는 이미 마르크스가 사망하기 이전 세상을 떠난 상황이었다. 예니와 엥겔스 역시 마르크스의 악필을 완벽하게 독해할 수 있는게 아니라서,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예전에 편지로 주고 받은 기억을 더듬어가며 완성해나가야 했다. 마르크스가 얼마나 심각한 악필이었는지 2년에 걸쳐 자본론 2권 원고를 정리 출간하는 과정동안 건강관리를 잘 하는 것으로 유명하던 엥겔스의 시력이 급격히 악화되기도 했다. 의사의 처방 끝에 다행히 실명은 막을 수 있었다. 뒤이어 자본론 3권 출간까지 완료된 이후 엥겔스는 미국에서 익명으로 관광을 즐기며 마르크스의 악필과 씨름하며 악화되었던 건강을 회복하였다. 제 2 인터내셔널을 설립해 국제공산주의 운동에도 힘썼다. 말년의 주요정당으로 등극한 [[독일 사회민주당]]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 마르크스의 사유방식 전체는 어떤 가르침이라기보다는 방법이다. 그것은 이미 만들어진 도그마들을 제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토대로 더 탐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잡이고 그런 탐색을 위한 방법이다. >---- > 사망하기 몇 달 전 엥겔스가 독일 정치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1895년 8월 5일 식도암으로 세상을 마쳤으며, 그의 유해는 화장되어 그의 유지(遺志)에 따라 해저에 가라앉혀졌다. 저서로는 『자연변증법 (Dialektik der Natur)』,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Der Ursprung der Familie, des Privateigentums und des Staats)』 등이 있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moscow-ussr-may-1-1980-people-dressed-in-red-with-red-flags-in-hands-CX37KK.jpg|width=100%]]}}} || 사후에는 마르크스, 레닌과 함께 공산주의 3대 위인으로 추앙받았다. 소련이나 동독의 정치행사를 보면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3인의 초상화를 함께 배치한 경우가 많았다. [[동독군]] 최정예 부대에 '프리드리히 엥겔스 연대' 이름이 붙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